여행은 혼자가는게 간지 - 제주도 (2)
사진/포토에세이2010. 4. 11. 10:45
오늘도 날씨는 내편
와하하게스트하우스에서의 쭈구리고 있는 둘째날 밤이 지나고, 여유있게 늦잠을 자고서 9시 30분쯤에야 출발했다. 일단 목적지는 김영갑 갤러리.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가 표선면 가시리 어딘가에 있는 가시식당을 찾아서 이제는 제발 밥다운 밥을 먹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해먹고 나갔지만 그건 생략하고 일단 출발.
다섯번째 여행지. 김영갑 갤러리의 입구.
김영갑 선생님께서 제주도의 풍광에 매료되어 몇 십년간 제주도의 모습들을 담아 삼달리에 있는 폐교를 개축하여 탄생한 것이 지금의 김영갑 갤러리인 두모악이다. 루게릭병 투병 중에도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연 두모악에는 김영갑 선생님이 생전에 찍으셨던 사진들이 보관 및 전시되어 있었다. 섬사람들은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이 제주도의 사진이 아니라 했다고 한다. 섬사람들 조차도 모르고 있던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내었기 때문이란다. 이런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들을 보면서, 삶에 있어서나 사진에 있어서나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열정이 내게도 있을까?
두모악 주변.
파란 하늘과 거대한 풍차. 이 얼마나 이국적인가.
가시리사거리주변을 헤메다가 겨우겨우 가시식당을 찾아들어갔다.. 그때의 감동이란... 드디어 제대로된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ㅜㅜ.. 몸국은 돼지의 내장 등을 우려낸 국물에 모자반이라는 해초의 일종으로 끓인 국이란다.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물들과 걸쭉한 국물때문에 그냥 무난하게 순대국이나 먹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육지에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 맛이긴 했다. 어찌됐건 제주도에서 처음 느끼는 포만감에 감동 백배 ㅜㅜ 이렇게 '좀 많이' 주린 배를 채우고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거쳐서 1112도로 삼나무 숲길로!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
길가 양 옆에 피어있는 유채꽃이랑.. 지다만...-_-; 벚꽃. 끝없이 이어지는 길과 파란 하늘. 저 멀리 보이는 오름들.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그래서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또 화보집시리즈를.. 내가 제주도에서 확실히 느낀건 아직 나는 사진을 너무 못찍는 것 같다. 내가 직접 봤던 것에 비하면 사진들은 그 아름다움을 절반도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
저 돌담 너머에 파란하늘이.
삼나무 숲 길가에는 이런 곳이.
책에서 봤었던 사진 속에서는 비가와서 였을까. 화창한 하늘의 삼나무 숲길은 웬지 분위기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 한적한 길에 살짝 바람이 불면 '숲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게 너무 좋았다. 거기에 향긋한 삼나무 향까지.....는 비염땜에 몰랐고 여튼 숲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정적을 깰때면 오감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삼나무 숲길을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지만 잠시 길가에 내려서 이런 풍경을 즐기는 것도 삼나무 숲길만큼이나 좋았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 오름으로 가는 길에 교래리에 있는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라는 분위기 있어보이는 집에서 점심을 해결했었는데, 거기서 일하시는 알바분이 내가 살면서 보아왔던 식당알바중에 가장 예쁜 알바분이셨다. 준 연예인급 초특급식당알바.. 내가 조금만 더 대담했더라면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왔을 텐데.. 후회중. 다음에 섬에 또 오게된다면 꼭 사진도 찍고 연락처도 물어봐야겠다.
하이드라보우 유니크. 윈드포스가 여기에?
오름은 제주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형으로 기생화산 혹은 측화산을 섬에서는 오름이라고 한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모자랄 정도로 야트막한 언덕정도의 높이지만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딱히 산이란 것이 없는 섬에서는 동네 뒷산의 느낌이었다. 제주도에는 유명한 오름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산굼부리와 아부오름, 그리고 용눈이오름이다. 그 중에서 원래 컨셉에 맞춰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용눈이오름으로 향했다. 사실 가장 유명한 곳은 산굼부리인데,산굼부리는 입장료도 있고 관광상품화 되어서 지나가는 길에 본 주차장에도 차들이 빼곡했다. 그에 비해 용눈이오름은 '용눈이오름길'이라는 표지판을 발견 못했으면 지나칠 뻔 했을 정도로 외진곳에 있어서 한적했다. 용눈이오름에서는 소를 방목하기 때문에 철조망을 쳐놔서 저렇게 돌로된 계단으로 철조망을 넘어가야 한단다... 웬지 독특한 느낌. 막상 용눈이오름 입구에 도착하자 '야트막한 언덕'이라던 것에 비하면 꽤나 높은 느낌이었다. 철조망을 넘어가면 용눈이오름을 한바퀴 빙 돌아서 정상에 올라갈 수 있도록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탐방로를 쭉 따라올라가면 키작은 풀들이 듬성듬성 나있고, 능선을 따라 올라온 바람과 마주하게 되는데,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제주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보통 이럴 때 '숨이 탁 막히는 듯하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된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바람을 느끼면서 정상에 앉아있으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때 내가 정상에 올라갔을 때 한 노부부가 사진을 찍고있었는데... 카메라가... 무려 라이카...ㅎㄷㄷㄷ 처음만나는 라이카의 포스란..
우도 선착장 근처에 있는 성산일출봉..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성산폐교를 찾아서.
한 시간을 헤메고 헤메고 묻고 물어서 찾아낸 여덟번째 여행지. 성산폐교.(구 성산수고 자리)
책 뒷부분에 성산폐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오래전 폐교된 학교. 그 쓸쓸한 정취에 대해 작가는 강한 애착을 보였었고, 나도 성산폐교는 꼭 가보고 싶었다. 우도로 들어가는 마지막 배시간은 6시이고 해가 져가는 5시~5시30분 사이에 성산폐교를 둘러보면 그 시간대의 따뜻한 느낌의 사광이 그 분위기를 더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에는 대략의 위치만 나와있을 뿐. 사람들에게 '성산폐교'에 대해 물어보면 모른다는 대답뿐... 우도에 일단 들어가고 다음날 나와서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성산폐교는 이 시간대에 가야만 그 쓸쓸함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떠올린게 옴니아. 스마트폰사고나서 처음으로 스마트폰사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 조금만 참고 아이폰 살걸. 데이터요금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무선인터넷으로 성산폐교에 대해서 검색. 어떤 펜탁스 K20D유저께서(알고보니 g2쓰시는분... 감동이 덜했나보군) 성산폐교를 찾다가 우연히 사진을 알아본 동네 주민이 성산수고라는 것을 알아서 길을 알려줘 찾았다는 글이 있었다. 그랬다. 성산폐교는 성산수고였다. 인근 주민분들께 여쭈어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과거 성산수고가 지금의 성산고등학교자리로 이전하면서 성산수고가 성산고등학교가 되었다. 그래서 성산폐교를 찾기 위해서는 성산수고로 여쭈어보면 안되고, 성산수고가 있던 자리로 여쭈어 보아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성산폐교.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방목되는 말들만이 추억을 지키고 있었다.
성산폐교에는 말 몇마리가 방목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무섭긴 했지만, 말들과 최대한 먼 곳 위주로 사진을 찍었다. 학교의 정경은 어디가고 잡초만 무성했다. '국어사랑'이라는 표지만이 이 곳이 학교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시간대도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해와 그 빛이 만들어 내는 긴 그림자가 폐허의 쓸쓸함을 더해주었다. 책에서는 사라진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리움 때문이라 했다.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있다는 것. 그것이 그 아름다움 일까. 그렇다면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들. 그것이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는 걸까.
길가에 핀 민들레는 그 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Hottest time. 6P.M - 우도행 마지막 배는 오후 6시
아홉번째 여행지. 우도.
우도에서 만난 낙조
혼자.
관광객들이 떠난 우도는 정말 좋았다. 역시 그 책은 좋은책. 푸른밤은 제주도에도 있긴 하지만 우도의 푸른밤이 좀더 그 농도가 짙어보였다. 가로등만이 밤길을 밝히는 우도의 분위기란... 그날 밤 3만원이나 주고서 혼자 묵은 민박집 방은 너무 컸다. 혼자이기 때문에 더 좋았지만 혼자여서 공허했던 그날 밤. 지지직거리는 티비를 보면서 깠던 맥주 세캔에 온갖 잡념들이 담기어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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