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장결의.

우도에서 혼자 맞는 아침.

전날 맥주 세 캔에 생각보다 취기가 올라서 쓰러지듯 잠들었던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이른시간에 일어났다. 야삐! 이 땐 몰랐지만, 우도의 진정한 가치는 마지막배부터 첫배사이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다.
국내 유일의 산호(홍조단괴)해변, 서빈백사.

이곳이 우도 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서빈백사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산호가 잘게 부숴져 백사장을 이루고 있는데, 에메랄드 빛 바다와 하얀 산호해변은 정말 여기가 우리나라 맞나 싶을정도이다.(내가 갔을때는 해가 덜떠서 그런지.. 물색깔은 좀 우중충했다.) 해변을 거닐면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데, 이 좋은 곳에 나와 혼자여행오신 듯한 한 분만이 계셨다. 파도소리와 걸을 때 마다 나는 산호소리. 우도의 절경들은 이런 고요함 속에서 느낄 때 그 진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것 같다.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우도에는 태극기가 많다. 왜일까..
내가 일등인줄 알았는데! 젠장!!
한국의 사이판. 하고수동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내발자국만 덩그러니.... 인줄 알았지
초록빛바닷물.
또다른 발자국의 주인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의 사이판으로 불리는 우도의 하고수동 해수욕장이다. 서빈백사에서도 물색깔이 이랬다면... 간지 폭발이었을 텐데.. 확실히 '백사장'을 보고나니 감흥은 좀 떨어졌지만. 섬의 아담한 해수욕장. 게다가 정말로 아무도 없는. 동네 아이들만이 멀리서 뛰어노는 해수욕장은 그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내가 제일 처음에 온 줄 알았지만, 떡하니 누가 왔다간 흔적들이 있어서 감동이 반감하긴 했다. 사이판을 안가봐서 모르지만, 사이판이 이런 곳이라면, 명불허전임에 틀림없으리라.

우도봉의 모습. 여기서 해안가로 내려가면 검멀레 해안을 볼 수 있다.
우도봉 정상에 있는 등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우도봉 정상에서.

우도는 정말 아담하다. 스쿠터를 타고 마을길을 누비다 보면 순식간에 우도 한바퀴를 돌게 된다. 돌담길 사이에서 유채꽃과 푸른 바다를 보다보면 도착하는 곳이 우도봉.


우도봉에 올라가려면 스쿠터를 세워놓고 걸어올라가야 한다. 어제 먹다남은 프링글스 1/6통가량이 내 아침밥이었는데, 확실히 프링글스를 먹으면서 올라가기에는 숨이차다. 원래는 해안 절벽을 따라 등산로가 있었으나, 추락위험이 있어 폐쇄했다고 한다. 서쪽으로 50m정도 올라가면 등산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등산로를 따라 우도봉에 올라서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인증샷용으로 배경역할을 하는 우도의 등대를 볼 수 있고, 등대에 관련된 간단한 전시실이 있다. 그리고 제주도와 우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특히 등대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정말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수평선만이 보이고, 북쪽을 바라보면 검멀레해안과 해안가마을, 중간중간 노란 유채꽃밭이 보인다. 남동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비로소 이 우도봉에 올라야만 우도구경을 끝낼 수 있는 것 같다. 우도에서의 느낌을 되새겨 보다가 문득 떠올랐는데, 섬에서의 내 행적은 여행이라는 거창한 것 보다도 구경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나혼자 사람 없는 곳을 즐기고, 사진찍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바람쐬다 온것. 여행이라기에는 다소 부끄러운 느낌이 들고, 5박6일간의 섬구경이 어울리는 것 같다. 각설하고, 우도봉에 올라서서 우도여행을 접게되는데. 그 이유인 즉슨,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우도로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도봉의 근처의 해안가에서는 관광상품으로 수상보트같은 것이 있는지 끊임없이 꺅꺅대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하나둘 몰려드는 커플들은 혼자있는 내가 만만한지 끊임없이 사진을 요구했다. 이런 젠장. 니들 사진은 니들 삼각대로 찍으란 말이다 버러지들아ㅜㅜ. 조용한 정적을 깨는 느낌에 방해받았다는 느낌을 받고선, 검멀레해안이고 개나발이고 빨리 우도를 뜨고싶은 생각 뿐이었다. 바로 항으로 향해 우도를 떠나는 배를 탔다.

물은 정말 푸르렀다. 우도 안녕!
올인에 나오던 섭지코지.

섭지코지. 정말 사람들이 바글바글 댔다. 주차장에 차 세우고 올라가자 마자 짱나서 내려왔다. 예쁘긴 예쁜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었다. 책에서 이병헌과 송혜교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라고 적혀있던 말을 기억한다. 이병헌과 송혜교, 희대의 선남선녀들이 섭지코지에 있었으니.. 이곳에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을만 했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 그 순간 자체가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이병헌과 송혜교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 어디라도 그 함께한다는 것 자체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일 텐데. 그 아름다움 만큼 이나 섭지코지가 아름답다는 것에 대한 비유였으리라.

섭지코지보다도 그 앞에있던 이 바다가 더 나았다.

구름은 좀 껴도... 아직도 제주도는 내편

제주시로 가는 동안 만난 수많은 푸른바다.

바다색이 아주.. 성산포항에서 섭지코지에 들렀다가 1132도로와 해안도로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동안 만난 바다는... 정말. '넌 감동이었어!' 가뜩이나 메모리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좀 다양한 사진을 찍자는 생각에, 참고 참고 또 참았지만 참은 사진이 이정도.. 딱히 이름도 없는 그냥 '바닷가' 가 이정도였다. 여름이라면 정말 풍덩! 하고 뛰어들고 싶을정도로 새파란 바다. 우리네 어릴 적 동요중에 「초록빛 바닷물에~ 두손을 담그면…」이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었다. 유치원을 안다녀서 그런지, 동요/동화 같은거랑은 거리가 있어서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때 내가 겪은 바다는 대부분이 황해였고, 한두번의 동해 뿐이었다. 도대체 초록빛 바닷물은 무슨 바닷물일까 하고 생각했었다. 황해는 구정물이었고, 동해는 초록(草綠)빛이라기 보다는 청(靑)색의 바닷물이었다. 아마도 초록빛 바닷물에 두손을 담갔다던 그 소녀는 필시 제주도에서 그리 했으리라. 나도 발이라도 담가볼 걸 그랬네..

맛있는 멸치국수. 몸국->멸치국수. 초 헝그리테크

열번째 구경. 조천마을. 할 말이 많다.

책에서 소개한 수 많은 여행지 중에 거의 유일하게, 최고로 실망한 곳이 이 조천마을. 북촌을 지나치는 바람에 이곳으로 왔는데, 내가 기대한 어촌마을의 정취는 거의, 아니 전혀 없었다. 확실히 제주시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현대화도 많이 됐고. 섬의 상징인 현무암 돌담보다도 시멘트로 바른 돌담이 더 많았다. 여기서 사진도 많이 찍으려고 메모리도 아끼고 있었는데, 실망한 마음에 제주시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와흘길로 향했다.

열한번째 구경. 와흘길을 나타내는 단어는 정적. 쓸쓸함.
아무도 타는 이 없는 녹슨 자전거.

성산폐교를 좋아하는 글쓴이에게, 와흘길 또한 충분히 사랑스러운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인적드문 곳에 드문드문 서있는 나무 몇 그루. 지도에도 없지만,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이 곳이 와흘길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곳이었다. 쭉 남쪽으로 내려가면(내려가지만 경사는 올라간다.) 교래사거리나 산굼부리, 1112도로로 이어지지만,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었다.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고, 그냥 지나왔을 뿐이지만. 그 잔잔한 감동이 좋았다.

두번째 게스트하우스. 이레 게스트하우스.

잘 곳이 없으면 낭패이기도 하고. 시간도 애매하길래 일단 방부터 잡자는 생각에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전화로 위치를 물어 찾아간 곳은 이레 게스트하우스. 와하하보다도 건물도 예쁘고 분위기도 웬지 쁘띠쁘띠했다(?). 구조는 콘도식으로 방 하나에 2층침대가 하나 있고 나머지 부대시설은 같이쓰는 시스템.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어서 좋았다. 특히, 같이 샤워하는 걸 싫어하는 여자분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딱히 여기서 찍은사진이 없어서 말 나온김에 리뷰를 하자면
이레 게스트하우스
가격 : 18000
분위기 : ☆
부대시설 : ★★★★★
침대 : ★★★★
시설하나는 확실히 좋았다. 가격도 18000원이면 그닥 비싸지 않았고. 침대도 와하하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이었던 것 같다(사실 게스트하우스에서 푹신푹신한 침대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다만! 그러나! 분위기가 너무 최악이었다. 일단 1실에 2인이라서 룸메가 나같은사람이거나, 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날은 이미 끝난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제주 시내를 돌고 돌아오니 한분이 계셨는데. 원래그러신건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자친구랑 같이와서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건지는 몰라도 정말정말레알링딩돋을정도로 말이 없으셨다. 뭐 그날은 끝난거지 뭐. 그리고 콘도같은 방 하나에 다들 들어가는 거라서 다소 규모가 작아 시끄러운 분위기가 될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 얘기하면 웬만한 얘기는 들릴 정도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할만한 '로비' 같은 곳도 없었을 뿐더러..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면 이 게스트 하우스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의 묘미는 객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분위기는 거의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뭐 나라고 잘한 건 아니었다. 저녁에 이마트에서 맥주 한 캔이랑 조각치킨 3천원 짜리 ㅜ_ㅜ를 사다가 먹으려고 했다. 와하하에서의 처절함이 떠올라서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방안에서 먹기에는 룸메분이 너무 조용하셨고 거실에서 먹자니.. 거실에 붙어있던 '금연, 금주' 가 떠올라서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면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밖은 너무 춥고. 맥주가 술이야? 라고 우겨도 안먹히겠지.. 하고 고민하는데 밖에서 맥주캔따는 소리가 들렸다. 야삐!!!!!!!!!!!!!!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챙겨서 나가니 여자분 한분이 지도를 보시면서 맥주를 드시고 계셨다. 수줍게 다가가서

'여기 앉아도 될까요?'
'네 그럼요'

솔직히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앉고보니 이모분이 앉아계셔서... 묵묵히 나온자 맥주와 치킨을 처묵처묵했다. 치킨은 뭐 그래 퍽퍽한지 원.. 그 분이 지도를 열심히 보시더니 내게 하문하셨다.

'온지 얼마나 되셨어요?'
'네? 아 저 그 그게 저 아 저 오늘이 4일 째에요! 어.. 음... 얼마나 되셨어요?'
'아 저는 어제 왔어요 어디어디 가보셨어요?'
'저는 그냥 일주했는데.. 어디 가보셨어요?'

내가 숫기가 없어서 말을 먼저 못붙일 뿐이지,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면 화려한 말빨로 당장에라도 베프를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분이 하문하시는 물음에 대답하고, 그냥 대답만 하기 민망해서 똑같은 질문을 여쭈어올릴뿐..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대화는 끊어지고 나는 다 먹고 들어가서 잤다.. 쩝... 으이구 한심 'ㅅ'=3...
아 이제 생각해보니, 제주시내 돌고 들어와서 맥주랑 치킨이랑 헬멧들고서 들어가는데 미닫이 문인 걸 깜빡하고 내가 헤메니까 '배달오신 분이세요?' 라고 묻던 그 '아줌마'..-_-) 잊지않겠다.
이게 바로 올레.
제주 시내에도 벚꽃이 만개. 아니 오히려, 만개를 지나 지고 있었다. 꽃잎이 눈처럼.
열두번째 구경. 제주시내 사라봉.

제주시내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라봉으로 먼저 향했다. 도착한 시각이 5시 30분. 일몰시각을 6시 30분으로 잡고 조금 넉넉잡아 도착했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이래서는 일몰은 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일단 사라봉으로.

섬에서의 강민석 부럽지 않은 화보집의 꿈 중에서 가장 맘에드는 사진 중 하나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 사라봉에서 일몰은 볼 수 없었다. 날씨가 너무 흐려서 어디에 해가있는지 조차 알기 힘들었다. 포기하고 그냥 제주시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제주항과 제주공항을 보면서. 사라봉 정상에 있는 정자에 올라 꽃구경이나 실컷 했다. 오르는 길목길목마다. 그리고, 팔각정을 빙 둘러서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이 때 다시 느낀 거였지만 정말 여행타이밍 잘잡았다ㅜㅜ.. 아마 서울에서 꽃구경 가기는 물건너 간듯 하지만, 제주도에서의 추억만으로도 B+정도의 만족감은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제주도서부터 서울까지. 아마 가장 오래 벚꽃을 볼 수 있었던 행운아 중 한명이었던 것 같다.
동문시장 순대국.. 하악하악
차림표는 여느 시장 순대국 집과 다르지 않다.

일단 저녁을 해결할 요량으로 사라봉에서 내려와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보성시장 내에 있는 감초식당에 가서 순대국을 먹으려 했으나 동문시장이랑 보성시장이랑 헛갈려서... 하긴 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은 동문시장이니깐 상관없어! 라고 서둘로 합리화를 하고서 시장구경을 했다. 섬에서 느낀 것은 섬은 회가 정말정말 싼 것 같다. 그 회를 먹었어야 했는데.. 돈도 없고 혼자먹기는 그래서 못먹은게 천추의 한. 같은 재래시장이어도 섬에서의 재래시장은 또 그 느낌이 어찌나 색다르던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참치처럼 생긴 어마어마하게 큰 생선의 이름이 방어였다는 것과. 동태가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태서 참치만했다는 것. 그리고 동문시장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광명식당에서 순대국밥을 시켰다가 밥이없다는 이유로 쫓겨났던것. 친절한 아주머니가 계셨던 식당에서 먹었던 순대국이 대박이었다는거.. 처음엔 왜 순대국이 이리도 많은 가 했는데, 제주도 흑돼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제주도의 거의 대부분의 식품은 돼지와 해산물로 귀결된다. 따라서 둘 중 하나라도 안먹는 사람은 제주도의 맛을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섬에서 가장 유명한 국수 투톱만 해도 멸치국수, 고기국수 아니던가! 여튼 순대국은 정말 맛있었다.
산지천. 청계천의 모델.
동문시장 바로 앞에는 산지천이라는 곳이 있는데, 조명시설을 휘황찬란하게 해놓아서 아경이 괜찮다. 바로 옆에는 제주의 명동 칠성로가 있지만 혼자 왔기때문에 칠성로는 패스. 산지천을 둘러보고 탑동야외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산지천은 청계천의 모델이 되었다고도 하던데, 기대가 컸던 탓일까? 생각보다는 그렇게 감흥이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기가 산지천이 아닌가??

탑동 야외공원. 바다를 접하고 있는 특권일까.

탑동에가면 바닷가에 야외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농구코트가 많아서 마치 도림천에 온 느낌이었지만... 도림천 따위 떡실신.. 일단 번화함의 정도에서 부터 제주시내의 중심가에 있는 탑동이 훨씬 번화했지만(도림천은 그래도 서울인데... 그래도 떡실신) 바다를 끼고있는 바다어드밴티지는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을 듯 싶었다. 바닷가를 따라있는 산책로를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불꽃놀이를 하면서 걸으면... 흐어엏헝헝;ㅅ;.. 근처에는 바이킹도 있고 간단한 놀이기구도 있어 젊은 친구들이 즐길만한 거리가 많았고 눈에 보일 정도로만 멀찍이에는 횟집들도 있어서 확실히 번화가다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는 걸 보면서, 섬도 역시 다를 것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실 섬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똑같은 사람사는 곳인데. 육지 사람들은 섬에 대해 로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었고.. 섬사람들도 그럴까? 육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 - 내가 그랬던 것과 같은 그것들을 가지고 있을까?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새로움이 되는 것. 이런게 여행이고 이런게 신선한 경험인 것 같다.

내사진의변천사

나/단상2010. 4. 12. 16:33

처음엔 사진에 내가 없는게 아쉬울 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의 사진들을 찍었지만, 항상 나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는
사진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는 사진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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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날씨는 내편

와하하게스트하우스에서의 쭈구리고 있는 둘째날 밤이 지나고, 여유있게 늦잠을 자고서 9시 30분쯤에야 출발했다. 일단 목적지는 김영갑 갤러리.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가 표선면 가시리 어딘가에 있는 가시식당을 찾아서 이제는 제발 밥다운 밥을 먹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해먹고 나갔지만 그건 생략하고 일단 출발.

다섯번째 여행지. 김영갑 갤러리의 입구.
故김영갑 선생님이 생전에 쓰시던 작업실

김영갑 선생님께서 제주도의 풍광에 매료되어 몇 십년간 제주도의 모습들을 담아 삼달리에 있는 폐교를 개축하여 탄생한 것이 지금의 김영갑 갤러리인 두모악이다. 루게릭병 투병 중에도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연 두모악에는 김영갑 선생님이 생전에 찍으셨던 사진들이 보관 및 전시되어 있었다. 섬사람들은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이 제주도의 사진이 아니라 했다고 한다. 섬사람들 조차도 모르고 있던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내었기 때문이란다. 이런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들을 보면서, 삶에 있어서나 사진에 있어서나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열정이 내게도 있을까?

두모악 주변.

파란 하늘과 거대한 풍차. 이 얼마나 이국적인가.

드디어 제대로된 밥을.. 이것이 몸국.

가시리사거리주변을 헤메다가 겨우겨우 가시식당을 찾아들어갔다.. 그때의 감동이란... 드디어 제대로된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ㅜㅜ.. 몸국은 돼지의 내장 등을 우려낸 국물에 모자반이라는 해초의 일종으로 끓인 국이란다.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물들과 걸쭉한 국물때문에 그냥 무난하게 순대국이나 먹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육지에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 맛이긴 했다. 어찌됐건 제주도에서 처음 느끼는 포만감에 감동 백배 ㅜㅜ 이렇게 '좀 많이' 주린 배를 채우고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거쳐서 1112도로 삼나무 숲길로!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

....노코멘트...

길가 양 옆에 피어있는 유채꽃이랑.. 지다만...-_-; 벚꽃. 끝없이 이어지는 길과 파란 하늘. 저 멀리 보이는 오름들.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그래서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또 화보집시리즈를.. 내가 제주도에서 확실히 느낀건 아직 나는 사진을 너무 못찍는 것 같다. 내가 직접 봤던 것에 비하면 사진들은 그 아름다움을 절반도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

저 돌담 너머에 파란하늘이.

여섯번째 여행지. 1112길 - 삼나무 숲길.
삼나무 숲 길가에는 이런 곳이.

책에서 봤었던 사진 속에서는 비가와서 였을까. 화창한 하늘의 삼나무 숲길은 웬지 분위기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 한적한 길에 살짝 바람이 불면 '숲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게 너무 좋았다. 거기에 향긋한 삼나무 향까지.....는 비염땜에 몰랐고 여튼 숲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정적을 깰때면 오감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삼나무 숲길을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지만 잠시 길가에 내려서 이런 풍경을 즐기는 것도 삼나무 숲길만큼이나 좋았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 오름으로 가는 길에 교래리에 있는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라는 분위기 있어보이는 집에서 점심을 해결했었는데, 거기서 일하시는 알바분이 내가 살면서 보아왔던 식당알바중에 가장 예쁜 알바분이셨다. 준 연예인급 초특급식당알바.. 내가 조금만 더 대담했더라면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왔을 텐데.. 후회중. 다음에 섬에 또 오게된다면 꼭 사진도 찍고 연락처도 물어봐야겠다.

하이드라보우 유니크. 윈드포스가 여기에?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날씨가 좋으니 셔터만 누르면 작품

합법적 월담

일곱번째 여행지. 용눈이 오름에서 내려다본 제주도. 저 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그냥 이렇게 앉아만 있어도 좋은걸.

남들이 보지 않아도 피어납니다.

오름은 제주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형으로 기생화산 혹은 측화산을 섬에서는 오름이라고 한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모자랄 정도로 야트막한 언덕정도의 높이지만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딱히 산이란 것이 없는 섬에서는 동네 뒷산의 느낌이었다. 제주도에는 유명한 오름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산굼부리와 아부오름, 그리고 용눈이오름이다. 그 중에서 원래 컨셉에 맞춰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용눈이오름으로 향했다. 사실 가장 유명한 곳은 산굼부리인데,산굼부리는 입장료도 있고 관광상품화 되어서 지나가는 길에 본 주차장에도 차들이 빼곡했다. 그에 비해 용눈이오름은 '용눈이오름길'이라는 표지판을 발견 못했으면 지나칠 뻔 했을 정도로 외진곳에 있어서 한적했다. 용눈이오름에서는 소를 방목하기 때문에 철조망을 쳐놔서 저렇게 돌로된 계단으로 철조망을 넘어가야 한단다... 웬지 독특한 느낌. 막상 용눈이오름 입구에 도착하자 '야트막한 언덕'이라던 것에 비하면 꽤나 높은 느낌이었다. 철조망을 넘어가면 용눈이오름을 한바퀴 빙 돌아서 정상에 올라갈 수 있도록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탐방로를 쭉 따라올라가면 키작은 풀들이 듬성듬성 나있고, 능선을 따라 올라온 바람과 마주하게 되는데,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제주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보통 이럴 때 '숨이 탁 막히는 듯하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된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바람을 느끼면서 정상에 앉아있으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때 내가 정상에 올라갔을 때 한 노부부가 사진을 찍고있었는데... 카메라가... 무려 라이카...ㅎㄷㄷㄷ 처음만나는 라이카의 포스란..

우도 선착장 근처에 있는 성산일출봉..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성산폐교를 찾아서.
한 시간을 헤메고 헤메고 묻고 물어서 찾아낸 여덟번째 여행지. 성산폐교.(구 성산수고 자리)

책 뒷부분에 성산폐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오래전 폐교된 학교. 그 쓸쓸한 정취에 대해 작가는 강한 애착을 보였었고, 나도 성산폐교는 꼭 가보고 싶었다. 우도로 들어가는 마지막 배시간은 6시이고 해가 져가는 5시~5시30분 사이에 성산폐교를 둘러보면 그 시간대의 따뜻한 느낌의 사광이 그 분위기를 더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에는 대략의 위치만 나와있을 뿐. 사람들에게 '성산폐교'에 대해 물어보면 모른다는 대답뿐... 우도에 일단 들어가고 다음날 나와서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성산폐교는 이 시간대에 가야만 그 쓸쓸함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떠올린게 옴니아. 스마트폰사고나서 처음으로 스마트폰사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 조금만 참고 아이폰 살걸. 데이터요금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무선인터넷으로 성산폐교에 대해서 검색. 어떤 펜탁스 K20D유저께서(알고보니 g2쓰시는분... 감동이 덜했나보군) 성산폐교를 찾다가 우연히 사진을 알아본 동네 주민이 성산수고라는 것을 알아서 길을 알려줘 찾았다는 글이 있었다. 그랬다. 성산폐교는 성산수고였다. 인근 주민분들께 여쭈어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과거 성산수고가 지금의 성산고등학교자리로 이전하면서 성산수고가 성산고등학교가 되었다. 그래서 성산폐교를 찾기 위해서는 성산수고로 여쭈어보면 안되고, 성산수고가 있던 자리로 여쭈어 보아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성산폐교.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방목되는 말들만이 추억을 지키고 있었다.

성산폐교에는 말 몇마리가 방목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무섭긴 했지만, 말들과 최대한 먼 곳 위주로 사진을 찍었다. 학교의 정경은 어디가고 잡초만 무성했다. '국어사랑'이라는 표지만이 이 곳이 학교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시간대도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해와 그 빛이 만들어 내는 긴 그림자가 폐허의 쓸쓸함을 더해주었다. 책에서는 사라진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리움 때문이라 했다.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있다는 것. 그것이 그 아름다움 일까. 그렇다면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들. 그것이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는 걸까.

길가에 핀 민들레는 그 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Hottest time. 6P.M - 우도행 마지막 배는 오후 6시
아홉번째 여행지. 우도.
우도에서 만난 낙조

혼자.
언제나 혼자였을 그대.
제주도의 푸른밤? 푸른밤은 우도에 있었다. - 서빈백사해수욕장
단촐한 혼자만의 저녁.

관광객들이 떠난 우도는 정말 좋았다. 역시 그 책은 좋은책. 푸른밤은 제주도에도 있긴 하지만 우도의 푸른밤이 좀더 그 농도가 짙어보였다. 가로등만이 밤길을 밝히는 우도의 분위기란... 그날 밤 3만원이나 주고서 혼자 묵은 민박집 방은 너무 컸다. 혼자이기 때문에 더 좋았지만 혼자여서 공허했던 그날 밤. 지지직거리는 티비를 보면서 깠던 맥주 세캔에 온갖 잡념들이 담기어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